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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의 우울과 불안, 위로하고 인정하고 이해해주세요

동사협 0 119 10.22 09:06

학생들의 마음의 병 ‘심각’ 수준
자해·자살 시도 사례도 증가세
학업 외 고립·외로움 등도 원인
말수 줄고 홀로 있으려하면 의심
힘든 것 나눌 수 있는 존재 필수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난 뒤 아이가 변했어요. 짜증이 늘고, 게임이나 댄스 등 이전에 즐겨했던 취미들도 흥미를 잃었는지 이제는 하지 않고, 외부와는 담을 쌓은 채 방안에 틀어박혀 잠만 자려고 해요. 친구들을 만나러 밖에 나가는 일도 거의 없어요. 성적도 많이 떨어졌고, ‘재미없다’ ‘살기 싫다’는 말을 자주 해요.”(고1 아들 학부모 조선주씨)

“사소한 말에도 공격적으로 반응하고, 눈을 마주치지 않고 무표정한 표정으로 ‘몰라’ ‘그냥’ ‘됐어’ ‘피곤해’같은 말을 자주 해요. 작년만 해도 살가운 딸이었는데, 변해버린 모습에 난감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예요. 사춘기라서 그런가 싶다가도, 사춘기 증상이 우울증 신호와 유사하다는 말을 들으니 불안해요. 혹여 우울증 징후가 아닐까 싶어서요.”(중2 학부모 이선영씨)

‘마음의 병’ 앓는 청소년 급증

‘마음의 병'을 겪는 청소년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10대 미만 및 10대의 우울증 진료 환자는 2020년 4만808명에서 2024년 7만5232명으로 급증했다. 4년 사이 약 84.3% 늘어난 셈이다. 잠재적인 환자를 포함하면 실제 규모는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

청소년의 우울증 문제는 지난 국정감사에서도 화제로 등장했다. 국민의힘 서명옥 의원(보건복지위원회·여성가족위원회 소속)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우울증 진료를 받은 10~19살 청소년은 약 7만1300명에 달했다. 이는 2020년(약 3만8500명)과 비교하면 거의 두 배 가까운 수치다.

청소년 불안장애 환자도 증가 추세다. 2020년 1만9000여명 수준이던 청소년 불안장애 환자는 2023년 약 3만3300명으로 증가했고, 올해 상반기에는 2만600명에 달한다. 최근 ‘결국 해내는 아이들의 비밀’을 펴낸 노충구 뇌움한의원 원장(한의학 박사)에 따르면 “청소년 우울증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보고는 사실이며, 이는 최근 몇 년간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는 심각한 사회 문제”라며 “특히 코로나 이후 학업 스트레스, 비대면 문화 확산, 스마트폰 SNS 노출 등으로 인해 청소년들의 정신 건강이 크게 악화됐다”고 한다.

최근에는 슬픔을 직접 표현하기보다 짜증, 분노, 반항, 게임 중독, 또는 신체 통증 호소 등 비전형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가면 우울증' 사례도 증가하고 있어, 부모나 교사가 단순한 사춘기 행동으로 오인하고 지나치기 쉬워 조기 진단이 더욱 어려워지는 추세다.

경쟁 심화·학업 스트레스 등 원인

청소년 우울과 자살의 이유는 복잡하고 다양하다. ‘요즘 아이들 무기력의 비밀’을 펴낸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친구, 부모와의 관계, 학업, 입시 외에 고립, 외로움, 부담감, 존재감 등도 원인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청소년기 아이들의 경우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거나 해소하는 능력이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않아, 작은 갈등과 스트레스도 쉽게 우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불면, 식욕 저하, 집중 곤란, 자살 시도 등 전통적인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지만, 겉으로 보기에 우울의 깊이를 잘 알 수 없는 상태도 많아 부모의 관심과 관찰이 요구된다.

김현수 교수는 “우울을 호소하기보다 말수가 줄어드는 것, 혼자 지내려 하는 것, 급격한 성격 변화, (일상의) 무의미 호소, ‘쓰레기 같다’는 자기비하, 너무 힘들어서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의미가 담긴 말들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학업 스트레스, 선행 학습, 그리고 입시 부담은 청소년 우울증 발생과 자살 위험을 높이는 데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주요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노충구 원장은 “과도한 학습량과 성적 경쟁, 학원과 학교 숙제 부담, 그리고 부모와 사회의 기대 등 한국의 특성상 고등 시기의 대학 입시가 인생 성취와 직접 연결된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며 “여기에 장기간의 입시 준비 기간 동안 수면 부족, 사회적 고립, 자기 가치감 저하 등이 우울증을 심화시킬 수 있는데, 실제 청소년 정신건강 설문에서 학업 관련 스트레스가 심한 집단에서 우울증과 자살 위험이 2~3배 높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청소년 우울증의 주요 징후들

청소년 우울증은 직접적으로 “우울하다”고 말하기보다는 심한 짜증, 분노, 예민함 등 과민한 반응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지속적인 우울감, 슬픔, 공허감을 호소하며 스스로 낮은 자존감, 무가치감, 심한 죄책감을 느끼거나 절망감을 표현한다.

핵심적인 징후는 이전에 즐거워했던 취미 활동, 친구와의 관계, 게임 등 거의 모든 활동에 대한 흥미나 즐거움이 현저하게 사라지는 무쾌감증이다. 쉽게 지치고 피로감, 활력 상실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져 활동량이 현저히 줄어든다. 또한, 뚜렷한 의학적 이유 없이 두통, 복통 등의 신체적 통증을 자주 호소하며, 수면 패턴이 바뀌어 불면증을 겪거나 반대로 평소보다 지나치게 잠을 많이 자는 경우가 흔하다. 식욕이 크게 줄거나 늘어나 체중의 현저한 변화가 나타날 수도 있다.

노충구 원장은 “집중력 저하와 사고력 감퇴로 인해 학업 성적이 갑자기 떨어지며, 친구 관계를 피하고 사회적으로 위축되기도 한다”며 “가장 심각한 징후는 자해, 자살에 대한 반복적인 사고나 시도, 그리고 비행 행동, 약물 오용, 성적 일탈과 같은 위험한 행동의 증가인데 2주 이상 지속될 경우 우울증을 의심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청소년 우울증 증상은 사춘기와 흡사하다. 오인하지 않으려면 변화의 정도와 지속 기간에 주목해야 한다. 친구 관계에서 위축되거나 잦은 신체 증상 호소로 결석/조퇴가 잦아지는 경우도 우울증의 신호일 수 있다.

노충구 원장은 “수면, 식사, 활동 패턴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세심하게 관찰해야 하며 아이의 감정 상태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대화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며 “‘내가 없어져도 괜찮지 않을까’와 같은 부정적인 표현이 잦아질 경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청소년 우울증 대처하는 법

청소년 우울증을 완벽히 예방할 방법은 없다. 조기 발견과 세심한 관심, 적절한 대처가 최선이다. 특히, 부모가 청소년 자녀의 가장 중요한 정서적 지지 기반이라는 점에서, 안정적인 관계 형성과 긍정적인 환경 제공을 통해 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도록 평소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김현수 교수는 “많은 청소년들이 지금의 각박한 삶과 고통스런 과정에 대해 위로, 인정, 이해를 바라지만 그런 과정이 없는 것이 우울증을 더 악화시킨다”며 “자신을 이해하는 부모나 교사, 혹은 좋은 어른이나 친구집단의 존재 여부가 아주 중요한 예방책이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모는 청소년 우울증이 의지의 문제가 아닌 치료가 필요한 질환임을 인지하고, 아이를 비난하거나 섣불리 단정짓지 않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경청과 공감이 최선의 대처법이다. 자녀의 말이나 감정을 섣불리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공감하는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안전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줘야 한다.

노충구 원장은 “아이가 힘든 감정을 이야기할 때, ‘그렇게 화내면 안 돼’ ‘네가 의지가 없어서 그래’와 같이 판단하거나 비난하는 말을 피해야 한다”며 “대신 ‘그럴 수도 있겠구나’ ‘네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같다’ 등 아이의 괴로움과 고통에 공감하며 말의 내용보다는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려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청소년기 아이들은 어른들이 자신의 감정 표현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때 비로소 마음의 문을 열고 깊은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 “네가 요즘 많이 힘들고 짜증이 나는구나” “모든 게 다 하기 싫을 정도로 무기력하구나”와 같이 아이의 감정 상태를 되짚어 말해주면서 충분히 이해하고 있음을 표현하는 것도 필요하다.

과도한 기대나 비판, 통제적인 양육 방식은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므로, 격려와 칭찬 중심의 수용적인 태도로 전환하여 자존감을 높여줘야 한다. 일례로 ‘힘내라’는 말은 아이에게 부담이나 압박으로 느껴질 수 있으므로 삼가야 한다. 조급해하지 말고 조용하고 따뜻하게 지켜봐 주는 태도와 함께, 아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하는 작은 시도들을 격려하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는 것이 좋다.

가정에서 부모가 해야 할 일들

가정에서는 따뜻한 대화를 하며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를 위해 가족 간 대화 시간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것은 필수다. 스마트폰 없이 함께 식사하거나 대화하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지며 정서적 연결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가족 간 갈등은 즉시 해소하려 노력함으로써 불안정한 가정 환경이 조성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신체 건강은 정신 건강의 중요한 토대다. 아이가 충분하고 규칙적인 수면 습관, 균형 잡힌 식습관, 그리고 주 3회 이상 규칙적인 운동을 함께 실천함으로써 아이의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자녀의 긍정적인 면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데 인색해서는 안 된다. 긍정적인 또래 관계를 지지하고 과도한 학습 부담을 주지 않아야 한다. 무엇보다 성적이나 결과에 대한 완벽주의를 강요하기보다 노력의 과정과 성장에 초점을 맞춰 칭찬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이를 배움의 기회로 여기도록 돕고, 문제 해결 방법을 함께 찾아볼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청소년기 자녀에게 적절한 자율성과 선택권을 줌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삶을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자녀는 독립심과 책임감을 키우면서 우울증을 이겨낼 힘을 얻는다.

출처: 한겨례신문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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