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일부터 여성가족부가 ‘성평등가족부’로 확대 개편된다. 고용노동부 일부 업무가 여가부로 이관됐고, 향후 성평등가족부는 성평등 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원민경 장관은 초대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된다.
30일 여가부는 이날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됨에 따라 오는 1일부터 해당 법안이 시행된다고 밝혔다. 성평등가족부에는 기존 여성정책국이 격상된 성평등정책실이 새로 생기고, 17명이 증원된다. 성평등정책실 안에는 성평등정책관(기존 여성정책국), 고용평등정책관(신설), 안전인권정책관(기존 권익증진국)을 둔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 국무회의에서 여가부에 “남성 차별 부분을 연구하고 대책을 만드는 방안을 점검해달라”고 지시함에 따라 성평등정책관 산하에 ‘성형평성기획과’가 새로 생겼다. 이날 오후 열린 ‘성평등가족부 개편 브리핑’에서 이금순 여가부 여성정책과장은 “남성은 남성이, 여성은 여성이 차별받는다고 생각하는 인식격차가 크다. 성형평성기획과에서는 해당 사례를 발굴하고 의제화해서 관계부처 협력을 통한 정책을 추진하는 일을 한다”고 말했다. 다만 “기존 정책의 대상이나 방향이 크게 달라지는 건 아니다. 여성들이 겪는 구조적 차별에 주력하면서, 인식 격차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성형평성기획과, 성평등정책과 등이 속한 성평등정책관은 성평등정책을 기획·총괄하고, 성별 불균형·차별적 제도를 정비하며 성인지·성평등 교육, 성별영향평가, 성인지 예·결산제도 등을 시행한다.
여성계는 성평등정책실 신설을 반기면서도 성형평성기획과의 역할에 대해 우려도 했다. 임선희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은 “‘성형평성기획과’의 경우에 이재명 대통령이 꾸준히 언급하는 청년 남성 역차별 담론이 연상된다”면서 “소년·남성과 함께 하는 성평등 문화 확산은 꼭 필요하지만,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는 차별로 볼 수 없다는 게 국제적 합의라서 해당 과가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을 할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여성연합은 지난 19일 이 대통령이 2030 청년·공감 토크콘서트에서 남성 차별에 대해 언급한 데 대해 “청년세대의 어려움을 ‘남녀 간 갈등’으로 치환하고, 이를 마치 ‘남녀의 피해 인식이 대칭적’인 것처럼 간주하는 것은 구조적 성차별과 안티 페미니즘 문제를 그저 ‘젠더 갈등’으로 흐지부지 덮어버리는 문제”라고 비판한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이번 개편으로 고용노동부 업무가 일부 이관됨에 따라 성평등정책실 산하 고용평등정책관이 새로 생겼다. 특히 고용노동부가 담당하던 `적극적 고용개선 조치'의 일부를 성평등가족부가 담당하게 된다. 공공기관 및 500인 이상 민간기업(공정거래법상 공시 대상 기업은 300인 이상) 중 여성 고용 비율이 동종산업 내 유사규모 기업 평균의 70%에 미달하는 기업은 성평등가족부에 직종별·직급별 남녀 근로자 현황, 임금 현황과 차별적 고용 관행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한 시행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공공기관·지방공기업 등 1천여개 기관이 채용 비율, 근속연수, 임금 비율 등 채용단계부터 퇴직단계까지 기업의 성별 현황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를 의무적으로 공시하는 ‘성별근로공시제’도 시행한다. 박정식 여가부 혁신행정법무담당관은 이에 대해 “적극적 고용개선조치를 시행하지 않는 기업들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도 오는 1일부터 성평등가족부가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고용평등정책관은 이러한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성별근로공시제 시행과 함께 여성 경력단절 예방 정책 등을 수립한다.
전문가들은 성평등 정책 기획·조정 역할을 강화한 새 부처의 조직 개편안을 긍정 평가하면서도, 타 부처와의 협업 등 향후 세부 과제별 진행 상황을 세심히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경숙 전 여성가족부 정책보좌관은 한겨레에 “성평등정책실 확대개편은 성평등가족부의 핵심 가치인 젠더 간 권력관계 변화를 실현하려는 구조적 기반을 만들었다는 의미가 있다”면서 “성평등정책 중에서도 중요도가 높은 노동시장 관련한 고용평등정책관을 새로 만든 것도 중요한 조직적 변화”라고 말했다. 다만 이 전 정책보좌관은 “임금공시제는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해 이뤄져야 하는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에 불과해, 아직 관련 정책 상당 부분을 쥐고 있는 고용노동부와의 협업이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권익증진국은 안전인권정책관으로 개편돼 성평등정책실 소속이 된다. 기존 권익증진국 산하에 있던 가정폭력스토킹방지과의 명칭은 친밀관계폭력방지과로 바뀐다. 안전인권정책관은 여성 폭력 방지 정책을 총괄하고 가정폭력·스토킹·교제폭력 예방과 피해자 지원,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지원, 아동·청소년 성 보호를 위한 정책 등을 시행한다. 박정식 혁신행정법무담당관은 “기존엔 권익증진국장이 (여성폭력 관련) 업무를 총괄했지만, 향후 안전인권정책관 위에 성평등정책실장 직위가 생김에 따라 경찰청, 법무부 등 다른 부처와 더 원활한 협력체계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크게 훼손한 국가 성평등 정책 추진체계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성평등부 개편만이 아니라 국무총리 소속 양성평등위원회 개편이 이어져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이 전 여가부 정책보좌관은 “정부 부처는 일개미처럼 세부 정책을 집행하는 곳이라 정신이 없을 것이라, 차별금지법, 강간죄 개정, 생활동반자법 등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한 의제는 위원회에 사무국을 두고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도 대통령 후보 시절 여성가족부 확대 개편 등 성평등 공약을 발표하며 “성평등 거버넌스 추진체계도 강화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원민경 장관은 이날 “새롭게 출범하는 성평등가족부는 성별 임금 격차, 젠더폭력에서 느끼는 안전 격차 등을 해소하는 한편 성평등의 가치를 확산하는 등 국민 모두의 삶에 기여하는 실질적 성평등 실현을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고나린 기자 me@hani.co.kr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