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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뇌센터 지정 뒤 사망률 절반 줄어…“국내 100곳 더 필요”

동사협 0 65 04.09 09:14

인하대병원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 현장


인천 옹진군 백령도에 사는 72살 ㄱ씨는 지난해 12월 식사를 하다가 갑자기 얼굴 오른편 절반이 마비됐다. 발음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119구급대는 이 증상이 뇌졸중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헬기를 띄워 그를 180km 떨어진 인천 중구의 인하대병원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권역심뇌센터)로 옮겼다. ㄱ씨는 2시간50분 만에 병원에 도착했는데 뇌졸중 ‘골든타임’인 3시간 안에 가까스로 응급 혈관재개통술을 받고 회복했다.

이 병원 권역심뇌센터는 인천 지역 급성 심근경색·뇌졸중 등 진료 체계의 ‘등대’ 역할을 한다. 신경과·신경외과·심장내과 등의 교수가 밤마다 번갈아 당직을 서며 인천과 주변 섬에서 이송된 환자들을 치료한다. 하지만 심뇌질환 진료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엔 ‘갈 길이 멀다’는 게 현장 의료진의 말이다. 권역심뇌센터의 응급환자를 나눠 맡을 전담 의료기관을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뇌센터 생기고 뇌혈관질환 사망률 ‘절반’

“일반적으로 심근경색 환자가 회생할 골든타임은 1시간, 뇌경색은 3시간으로 봅니다. 10여년 전에는 (인천에서) 이 시간 안에 치료받는 환자가 10명 중 1명이 안됐어요. 지금은 40% 가까이 골든타임 안에 병원에 옵니다.”

나정호 인하대 권역심뇌센터장은 지난달 25일 인하대병원에서 한겨레와 만나 이렇게 설명했다. 인천은 심뇌혈관 질환 예방·치료의 ‘오지’로 꼽혀왔다. 의료기관이 부족한 외딴 섬이 많아 신속하게 환자를 이송하기 어려운 데다, 공항·항만·공단이 있는 지역 특성상 유동인구가 많아 환자도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로 많은 탓이다.

상황이 나아진 건 2012년 인하대병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권역심뇌센터로 지정되면서부터였다. 권역심뇌센터는 각 시·도에서 가장 중증도 높은 심뇌질환자를 치료하는 거점 기관으로, 전국에 14곳 있다. 인하대병원은 국비 15억원을 받아 심뇌질환 진료·재활 시설을 확충했고, 매년 6억원의 운영비를 지원받고 있다. 이 돈은 전문의들의 야간·주말 당직체계를 유지하고, 지역민·퇴원 환자들에게 심뇌질환 예방법 등을 교육하는 데 쓰인다.

나정호 센터장은 “예전에는 야간 응급 상황 때 전공의가 교수에게 연락하고, 교수가 병원에 급히 나와 환자를 처치했다. 권역심뇌센터로 지정되면서 교수가 상주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인하대병원에 따르면 인천의 인구 10만명 당 뇌혈관질환 사망률은 2012년 44.0명에서 2023년 21.3명으로 11년 새 51.6% 줄었다. 같은 기간 전국 평균 감소율(46.1%)보다 큰 폭이다. 구급대가 24시간 응급수술 가능한 병원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게 됐고, 권역심뇌센터의 교육·예방 사업으로 시민들이 심뇌질환 조짐을 금방 알아보게 된 결과다. 인천 시민의 심근경색 증상 인지율은 2012년 13.2%에서 지난해 55.3%로, 뇌졸증 인지율은 같은 기간 12.1%에서 63.1%로 늘었다.

지역센터 40곳 만든다더니, 실제론 10곳

이런 성과를 내기까지 밤낮으로 병원을 지키는 의료진의 고군분투가 있다. 이 병원 권역심뇌센터에선 신경과·신경외과에서 9명, 심장내과에서 5명의 교수가 각각 야간 당직 순번을 돈다. 당직 다음날에도 아침부터 입원 환자를 회진하고 외래 진료를 봐야 해 총 근무 시간이 100시간을 넘기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2월 전공의 이탈 이후론 당직 근무가 더욱 고되다.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전국 14개 권역심뇌센터에서 일하는 전공의는 2023년 말 275명에서 지난달 43명으로 84.4% 줄었다. 인하대병원의 경우 한 순번당 교수 2명, 전공의 2명이 당직을 돌았지만 지금은 교수 2명이 전부다. 3명 이상의 환자가 한번에 몰리면 교수 한명이 동시에 여러명을 처치하거나 불가피하게 환자를 전원시켜야 한다.

격무에 지친 교수들은 떠난다. 인하대병원 관계자는 “최근 신경과 교수 한 명이 당직 빈도가 더 적은 병원으로 이직하자, 우리 병원도 급히 다른 대학병원에서 교수를 모셔왔다”며 “교수 한 명만 더 잃어도 24시간 진료를 유지하기 어려운 병원이 많다”고 전했다.

이에 권역심뇌센터와 연계된 ‘지역심뇌혈관질환센터’를 확충해, 권역심뇌센터에 쏠리는 진료 하중을 나눠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지역심뇌센터에는 당직 전문의가 병원에 상주하는 대신 응급 상황에서 병원에 와 진료할 수 있도록 ‘온콜’(on-call)로 대기한다. 복지부는 지난 2023년 낸 ‘제2차 심뇌혈관질환관리 종합계획’에서 지난해까지 지역심뇌센터 30∼40곳을 지정하기로 했지만, 올해 1월 10곳이 생긴 게 전부다. 인천엔 계양구 인천세종병원 한곳만 지정됐다.

임준 인하대병원 권역심뇌센터 예방관리센터장은 “사각지대 없이 심뇌질환자가 골든타임 안에 전문 의료기관에 도착하게 하려면 전국적으로 100곳 정도의 (권역·지역)심뇌센터가 필요하다”며 “24시간 운영 심뇌센터는 (당직비 등) 비용 대비 수익이 적어 시장 논리에만 맡기면 과소 공급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민 생명에 직결되는 인프라인 만큼 적극적인 정부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료진 확보를 위해 권역심뇌센터의 고난이도 치료에 대한 보상을 개선하는 것도 과제다. 나정호 센터장은 “지금은 뇌졸중 치료실의 국민건강보험 입원 수가가 (환자 중증도가 더 낮은) 일반 간호간병통합병동보다 적다. 이래선 병원이 충분한 의사를 뽑을 수 없고, (인력 부족에 따른) 고된 근무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며 “심뇌질환에 대한 보상을 현실화 해야 이 분야 진료가 지속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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