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사실상 노인 연령 기준 상향을 염두에 두고 관련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초고령화로 인한 노인 복지 지출 급증이 노인 연령 조정의 주된 원인인데, 심각한 노인빈곤 문제가 악화되지 않게 정년·연금 등 제도 변화를 함께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1일 보건복지부 설명을 종합하면, 복지부가 오는 5월 개최할 ‘노인 연령 전문가 간담회’에서 관련 학계 전문가들이 노인 연령 기준의 상향 폭을 정부에 제안할 예정이다. 복지부는 이를 토대로 노인 연령 상향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다. 복지부는 지난 1월 올해 업무보고에서 노인 연령 조정에 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힌 이후, 2월부터 세 차례 전문가 간담회를 열어 해외 동향 및 보건·노동 관점에서 본 노인 연령 문제를 다뤄왔다. 앞으로 정년 조정과 노인 연령 인식조사 등에 대해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노인’ 연령 기준은 1981년 만들어진 노인복지법에서 ‘만 65살 이상인 자’를 경로우대 대상으로 규정한 것에 근거한다. 이후 등장한 사회보험과 각종 사회보장제도가 이 기준을 따르면서 ‘65살’이 노인 연령의 기준으로 통용되고 있다. 다만 명확한 기준은 없기 때문에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에서는 55살부터 75살까지 다양한 기준을 사용하고 있다.
정부가 44년 만에 노인 연령 조정 논의를 띄운 배경에는 노인 복지 지출 급증 우려가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5년 노령 정책 예산 분석’을 보면, 올해 중앙정부 사회복지 분야 예산 229조1천억원 중 노령 분야 예산은 115조8천억원(50.6%)으로, 처음으로 절반을 넘었다. 기초연금 등 정부가 의무로 지출해야 하는 비용도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기초연금 수급 연령을 현행 65살에서 70살로 높였다면, 지난해 기준 6조8천억원을 절감했을 것이란 추계를 내놓기도 했다.
과거에 비해 노인이 신체적으로 건강해졌다는 사실도 노인 연령 상향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윤환 아주대의료원 노인보건연구센터 교수(예방의학교실)는 복지부의 3차 노인 연령 전문가 간담회에서 “건강과 기능 상태 등을 고려할 때 현재 70살은 과거의 65살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2023 노인실태조사를 보면, 스스로 ‘노인이라고 생각하는 연령’은 평균 71.6살이다.
다만 정부가 노인 연령 기준을 올리면 연금 등 사회보험과 고령층 대상 사회보장제도 대상자가 축소되는 ‘복지 공백’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통계청 국가통계연구원의 ‘한국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 이행현황 2025’를 보면, 우리나라의 66살 이상 상대적 빈곤율(중위소득 50% 이하 비율)은 39.8%로, 2022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전문가들은 노인 연령 상향에 맞춰 고령층의 소득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양난주 대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노동시장에서 퇴직하는 연령이 연금을 수급하는 연령이 돼야 하고, 이 나이가 곧 노인 연령이 돼야 한다”며 “공식적으로 노동시장에서 쫓아낼 수 있는 나이(정년)는 60살인데 노인으로서 연금이나 기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나이에는 도달하지 못하면 공백이 커진다”고 짚었다. 일자리에서는 ‘나이 들었다’고 퇴출되고, 사회보장제도에선 ‘젊다’며 받아주지 않는 간극이 없어야 한단 취지다.
이상림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교통 경로우대 연령을 높이면 교통 바우처를 준다든지, 기초연금 연령을 올리면 빈곤층 지원은 더 두텁게 한다든지 안전장치를 만들면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노인연령을 올리더라도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마련해야 한단 목소리도 나온다. 이상림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현재는 노인연령 상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안전장치를 만들면서 가야 한다”면서 “교통 경로우대 연령을 높이면 교통 바우처를 준다든지, 기초연금 연령을 올리면 빈곤층 지원은 더 두껍게 한다든지 등으로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 : 한겨례신문 손지민 기자 sj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