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미성년자인데, 이렇게 거절당하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나를 재워줄 곳은 어디에 있을까’ 걱정에 시달렸어요.”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지 못해 3년 전 집을 나온 이하연(가명·17)양은 일주일 머무는 일시 쉼터 3곳과 보통 3개월을 지내는 단기 쉼터 2곳을 전전하며 지내왔다. 한겨울 서울역에서 밤을 지새우던 때도 있었다.
하연은 18일 한겨레에 “중장기 쉼터들에 입소 문의를 했지만 학원이 밤 10시에 끝나 밤 9~10시로 정해진 쉼터 복귀 시간을 지킬 수 없다며 입소를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중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한 하연은 현재 가정밖청소년이 주인공인 만화를 그리는 ‘애니메이터’를 꿈꾸며 미술학원에 다닌다. 아동학대로 피소된 아버지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는 조건으로 아버지가 구해준 월셋집에서 최근까지 약 1년을 홀로 지낸 하연은 성평등가족부에 직접 민원을 넣어 비로소 ‘원래는 쉼터 입소를 거절하면 안 된다’는 답변을 받고서야 최근 중장기 쉼터에 입소했다.
쉼터 바깥의 가정밖청소년 외에도, 쉼터 내부 규칙에 적응하지 못해 입퇴소를 반복하거나 이용 기간이 다 돼 여러 쉼터를 떠도는 이들도 있다.
김민석(가명·18)군은 집에서 나온 뒤 5년간 일시·단기 쉼터 7곳을 옮겨 다녔다. 민석은 “외출 시간, 목적 등을 (일일이) 설명하고 허락받아야 했고, 쉼터 프로그램이 있으면 개인 일정도 취소해야 해서 쉼터 선생님과 갈등이 생긴 적도 있었다”고 돌이켰다. 통상 3개월을 지내는 단기 쉼터 이용 기간이 끝났을 때가 가장 막막했다. 민석은 “상담을 하고 쉼터 선생님이 최종 결정을 하는데, 퇴소 기준이 뭔지 알 수 없었다”며 “친구 집에서 쪽잠을 자며 지냈다”고 말했다. 민석은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긴급주택에서 지내고 있다.
가정밖청소년 지원 정책이 ‘쉼터’ 중심으로 설계돼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정밖청소년이 보호받을 수 있는 곳은 전국 137곳 쉼터가 유일하다. 성평등가족부가 사업을 총괄하고 지방자치단체 등이 위탁받아 관리하는 쉼터는 일시·단기·중장기 쉼터로 나뉘고, 10명 안팎의 그룹홈으로 운영된다. 쉼터 지원 인원은 지난해 기준 2만4천여명으로 가정밖청소년의 일부만 수용한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2022년 실태조사에서 가정밖청소년의 27.5%만이 ‘청소년 쉼터’에 머물렀다고 응답했다.
쉼터는 '원가정 복귀'와 '사회 진출'을 목표로 입소자의 이용 기간을 결정한다. 쉼터 규칙 불이행 등이 퇴소 사유가 될 수 있다. 성평등부 관계자는 "쉼터에서 퇴소 계획을 하더라도 청소년이 동의하지 않으면 결정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청소년들은 퇴소 사유를 정확히 알 수 없어 거절할 수 없는, 제도와 현실 간의 괴리도 존재한다. 2023년 12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발간한 ‘가정밖청소년 주거권 등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보면, 스마트폰 이용을 금지당하는 등의 규칙으로 의사결정권이 침해되거나 쉼터 규칙에 문제 제기를 했다 강제퇴소를 당한 사례들이 나온다.
쉼터 밖 청소년들과 입퇴소를 반복한 청소년들은 향후 청소년복지지원법에 따른 자립지원을 받기도 쉽지 않다. 성평등부는 18살 이상 청소년 중 2년 이상(직전 6개월은 연속) 시설에서 보호받은 이들에게 매달 50만원의 자립지원수당을 최대 5년까지 제공한다. 쉼터와 사회의 중간다리 구실을 하는 ‘청소년 자립지원관’이 전국에 13곳 있지만 지원대상 1순위는 ‘시설 퇴소 후기청소년’, 2순위는 ‘그 밖에 자립지원이 필요한 청소년’으로 나뉘고, 19∼24살 청소년을 우선지원한다는 지침을 두고 있다. 변미혜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 활동가는 “청소년 자립지원관에 들어가려다 나이가 적어 입소하지 못한 경우나, 쉼터 퇴소 이후 별다른 대안이 없음에도 ‘자립 의지’가 확인되지 않아 자립지원관에 가지 못하는 경우들도 있다”면서 “시스템 안에 있는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정책이 설계되다 보니 그 안에 들어오지 못하는 이들은 계속 방치될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이에 인권위 보고서는 선행 연구를 인용해 “입퇴소를 반복하거나 지원 체계에서 이탈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우징 퍼스트(홈리스 주거제공 우선 정책)에 기반하여 시설 외의 다양한 주거 대안을 제공하고 자립을 지원해야 한다”고 짚었다.
실제로 ‘시설’에서 ‘주거’로 정책의 중심을 바꾼 나라도 있다. 미국은 홈리스 청소년에게 독립적인 주거를 보장하고, 관리자가 정기적으로 방문해 자립서비스를 제공하는 ‘전환 주거’ 정책 등을 운영한다. 마한얼 변호사(사단법인 두루)는 “가정밖청소년을 ‘주거 약자’로 보고 지원 주택을 마련하거나, ‘긴급 주거 지원’ 대상에 청소년을 포함하는 등 최소한 ‘의식주’는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나린 기자 m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