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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 빠진 일·가정 양립 정책에…외려 ‘모성 페널티’ 키울 수도

동사협 0 242 07.24 09:32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저출생 대책을 두고 성평등 관점이 빠졌단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여성계는 성평등 관점이 빠진 일·가정양립 정책은 여성이 오히려 노동시장에서 겪는 불이익을 확대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합계출산율 1.0’이라는 수치적 목표가 다시 등장하고, 대책에 불안정 노동자가 배제된 점에 대해서도 비판이 나왔다.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한국여성연구소, 한국여성학회는 23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정부의 저출생 대응 담론과 정책 진단’ 토론회를 열고 이같은 내용을 논의했다. 토론회에는 여성가족부 장관을 맡았던 정현백 성균관대 명예교수(사학과)와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을 맡았던 송다영 인천대 교수(사회복지학), 신경아 한림대 교수(사회학) 등이 참여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정책에서 강조된 일·가정양립 정책이 여성의 ‘마미트랙’(출산·육아로 유연근무를 하나 승진·승급 등의 기회가 적은 취업형태)을 강화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성평등 관점이 빠진 육아휴직 및 육아기 근무단축 강화, 남성 육아휴직 50% 달성 목표 등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일·가정양립 정책이 결국 여성을 중심으로 일과 가정을 동시에 챙기도록 유도하고, 정작 일·가정양립을 저해하는 남성 중심의 장시간 유급노동은 건드리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송다영 교수는 “성별분업이 있는 사회에선 여성이 일과 가족을 오가도록 유동성을 보호하는 데 초점이 맞춰지는 구조적 모순이 있다”면서 “전반적인 사회 기조를 바꾸지 않으면 일·가정양립이 노동시장 내 마미트랙, 모성 패널티(유자녀 여성이 일터에서 겪는 불이익)를 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출산·육아기에만 일·가정양립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적정한 노동시간과 일·생활 균형은 성별, 세대, 계층을 아우르는 기반이 돼야한다”고 짚었다. 신경아 교수도 “유연근무제가 성불평등 효과를 확대할 위험이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성평등 비전과 목표 설정이 우선적 과제”라고 말했다.

정부 대책에 불안정 노동자의 사각지대 해소 대책이 빠져있단 지적도 나왔다. 신 교수는 “비정규직, 프리랜서, 자영업과 중소영세기업 노동자 등 정책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수혜자를 전체 당사자에게 확대하기 위한 노력은 없었다”면서 “현실적으로 결혼·출산이 가능한 중산층 이상의 청년을 주요 타깃으로 설정했다”고 비판했다. 송 교수도 “정책 지원대상이 특정 그룹에 집중되면서 조세로 지원하는 정책 수혜의 역진성 문제가 발생했다”고 짚었다.

‘인구정책 컨트롤타워’로 새로 출범하게 될 인구전략기획부에 대해서도 우려도 빠지지 않았다. 신 교수는 인구전략기획부의 기능 중 경제계·종교계·언론계 등과의 협업을 통한 출생·육아 긍정적 인식 확산을 언급하며 “국민을 출산의 주체에서 종교계 등의 계몽사업 대상으로 전락시켰다”고 강조했다. 토론자로 나선 임선희 한국여성단체연합 정책국장은 “기획·평가·예산 배분 및 조정 기능을 수행하는 부처가 신설되는 것만으로 한국사회의 저출생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면서 “저출생의 근본원인인 사회적 불안과 불평등을 완화시키겠단 관점이 읽히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일·가정양립과 함께 제시된 양육, 주거 부분에 대해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주거 대책을 저출생 대책으로 합산하면서 저출생 대책 예산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이는 저출생 예산이 실패했단 프레임을 양산했다”(송다영 교수), “아동돌봄은 아이를 부모 대신 잠깐 보호·관리해주는 서비스가 아니라, 아동을 길러내는 과정이고 그에 맞는 전문성을 가진 일자리로 제도화돼야 한다”(백경흔 이화여대 여성학과 강사) 등의 의견이 나왔다.

근본적인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치가 나서야한단 의견도 제시됐다. 조은주 전북대 교수(사회학)는 “저출생 문제는 정책 수준에서는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정치의 차원에서 사회를 어떤 방식으로 재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광범위한 합의가 필요한데,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는 요원한 상황”이라고 짚었다. 

출처 : 한겨례신문 손지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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